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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성장과 지역발전을 지향하는 평생학습도시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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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제 60 회 진주시민 교양강좌
  • 개최일자 : 2015년 11월 19일
  • 강사 : 이인식

주제 : 경남의 빼어난 자연환경 보전과 이용
강사 : 이인식(우포따오기자연학교 교장)

오늘 강의를 해 주실 강사님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경남의 빼어난 자연환경 보전과 이용”이라는 주제로 강의해 주실 이인식 강사님께서는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계기로 1961년 시민운동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환경보전 운동을 실천해 오고 계십니다. 2008년 람사르총회 공동운영위원장으로 계셨고, 2015년 세계환경의 날 동백장을 수상하셨습니다. 현재는 우포따오기자연학교 교장으로 학생들에게 생태수업을 실시하는 등 국내 최대의 자연 늪인 우포늪 보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조용한 가운데 경청하여 주시고 강사님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창원이라는 도시에서, 아까 이창희 시장님께서 말씀하셨지만은, 주로 마산, 창원 이쪽에서 환경운동을 오래 해왔습니다. 그러다 5년 3개월 전부터 고향인 창녕 우포늪 근처 세진마을이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 63살인데 우리 마을 남자 중에서 제일 젊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까 우리 동네 어머니들하고 같이 앉아 있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젊은 분들도 와 있습니다만은, 상당히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2008년도 국제적 회의를 대한민국 처음으로 창원에서, 그런 인연으로 해서 제가 보잘것없는 시골 우포늪에서 따오기 복원을 하고 있고 아이들이 오면 교육을 같이 하고 합니다만은 오늘 불러주셔서 인연을 맺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한번 보면 잘 아시다시피 진주에도 진양호나 그 주변, 저는 우포늪이나 순천만, 우리나라에서 잘 아시다시피, 순천만 혹시 다녀오신 분이 계십니까? 한번 손을 들어주실랍니까? 아까 우포늪이나 순천만 다 다녀오셨죠? 근데 이것은 사실은 한 20년 전만 해도 다 국가가 보전지역을 해서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게 되고 진주도 최근에 세계적인 5대 축제가 되면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입장료를 아마 진주시민 외의 분들에게 받았죠? 순천시는 지금으로부터 벌써 한 5~6년 전부터 자연 안에 들어오는 것도 입장료를 받았습니다. 왜 그렇냐 하면 사실 지자체는 중앙정부에서 돈을 다 받아내기 때문에 서울 가서 계속 얘기를 해야 됩니다. 사실 일본이나 유럽은 오래 전부터 좋은 자연이나 관광유적지를 가진 데는 반드시 그걸 가지고 지역경제를 살리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으로 지역주민들의 복지에 쓰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규모에 예산을 가진 도시인데 1,200억이면 사실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돈들은 이미 그 분들이 경제적으로 이익을 취하면서, 그 돈 중에 입장료가 있습니다. 순천시가 한 15억 정도 되는데, 제가 순천에 대해 잘 아는 이유는 제가 순천만하고 우포늪을 보전했기 때문에 그런 일에 가서 강의도 하고 같이 의논도 하기 때문에, 최근에 15억 정도 주민들에게 각 마을마다 좋은 마을을 만들고, 돈을 그냥 나눠주는 게 아닙니다. 마을을 만들고 그 분들이 또 다른 선진지 같은 데 견학도 하고 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순천시를, 또 진주시를, 우리 창녕군을 잘 발전시킬 것인가. 무조건 우리가 중앙정부에 가서 돈 달라, 서울처럼 할 수 없으니까 우리 지역이 가진 특징에 따라 살아가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다행히 진주는 남강물, 낙동강 물 안마시죠? 잘 아시다시피 창원이나 부산이나 대구는 다 낙동강 물을 먹어서 굉장히 물 문제가 예민한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지리산 물이 내려오기 때문에 깨끗한 물을 먹었죠, 오랫동안. 그래서 우리 낙동강 쪽에서는 늘 물에 예민한데 잘 아시다시피 페놀 사건이 터지자 바로 그때부터 지역에서 ‘아, 환경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이렇게 시작해서 저도 한 24년 전이니까 지금보다는 많이 젊었을 겁니다. 그 시기에 30대 후반입니다. 그때 시작한 환경운동가 인연이 우리 2008년에 우포늪 보전운동, 90년도 낙동강 페놀을 시작으로 해서, 우리도 이 늪이 어떤 역할을 하냐면, 여기 진주도 남강을 따라 내려가면 의령, 함안 이쪽으로 가면 옛날에 늪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혹시 함안 쪽에 고향이신 분도 계실 텐데, 그리고 창녕도 마찬가지고 합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그런 늪들 다 논밭으로 만들고, 공장으로 만들어버리고, 우리가 그냥 인간이 만든 댐에 의해 다 유지하다 보니까 수질이라든지 많이 나빠졌습니다. 다만 홍수라든지 이런 건 많이 제어가 됐죠. 국토부가 보도 쌓고 해서. 그러나 우리가 옛날에는 상당히 많은 자연 늪들을 훼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유일하게 낙동강하고 바로 이어지는 곳이 우포늪이 살아있는 것을 알고 제가 이것을 보전하려고, 처음에는 시작을 했을 때는 지역주민이나 군에서 많은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앰뷸런스에 실려 가기도 하고 했습니다. 순천만에서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을 잘 보전해서 우포늪과 순천만이, 여기 2008년도에 국제회의를 창원에 유치하도록 우리가 제안을, 그 당시 경상남도 환경부에 우리가 제안을 드렸고, 총회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냐 해서, 우리가 그동안 볼거리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멸종된, 이 새가 사라진 정확한 연도가 기록에서는 80년대부터 사라집니다. 혹시 이런 새를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바로 이 새가 우리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79년도에 판문점에서 마지막 발견되어가지고, 이후에 안 보였지만은, 제가 추정하는 대는 80년대 초까지는 있었을 겁니다. 저 때가 우리가 뭘 할 때입니까? 이제 농약도 많이 쓰고, 비료도 많이 쓰고, 공장이 많이 만들어지고, 농업보다는 주로 제조업으로 갑니다. 그리고 마산, 창원 쪽에는 그때 자유수출지역이나 창원 공단이 들어서고 그래요. 진주 같은 데는 주로 고도로서의 옛 도시와 주변의 농업이 그때까지는 살아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어쨌든, 이런 새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시에 이런 것들을 어떻게 했냐면 “이번 기회에 이런 사라진 새들을 좀 살려서 뭔가를 한번 해 보자.”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따오기 복원을 제안하고, 그리고 지금 따오기 복원을 하고 있는데 본래 지난 이명박 정부, 박근혜 대통령 이때, 앞에 노무현 대통령 살아있을 때 제안이 됐지만 그때는 중국에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근데 이것은 국가원수들 간의 방문 때만 얻을 수 있는 외교적인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때 두 마리가 들어오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고 두 마리 더 수놈을 얻어 와서 4마리가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지금은 94마리가 되어서 2017년이 되면 100마리가 넘을 것으로 봅니다. 그 때쯤 되면 바깥으로 내보냅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증식을 잘 시켜도 이것을 내보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바로 주변의 농경지가, 결국은 미꾸라지나 농약이나 비료가 많아가지고 지금 자연산 미꾸라지를 잘 잡지를 못하죠, 우포늪 같은 곳에 정부가 258만평 정도의 땅을 국가보호지역으로 지정을 했거든요, 바로 거기의 개인 농경지도 많이 사들였습니다. 한 160억 정도 정부가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생물 다양성계약이라고 해서 농민들에게 혜택을 주면서 겨울에 만약 무논이나 보리나 볏짚을 남겨두면 평당 얼마씩 해서 돈을 지급합니다. 왜냐면 우포늪같이 철새를 보호하는 지역에서 농민들이 철새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보상책임이죠. 이제 그런 것을 만들면서 따오기 복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주로 하는 일이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이 따오기가 나중에 뭐가 되겠습니까? 그냥 죽은 새가 살아났다 이게 아니고 결국 이게 농업 브랜드가 되겠죠? 나중에 따오기표를 달게 되면 훨씬 더 농산물이, 따오기가 사는 곳에 사니까, 그래서 지금 일본이나 유럽 같은 곳에는 황새가 사는, 따오기가 사는, 또 다른 귀한 멸종된 새가 사는 지역의 농산물은 보통 1.7배 ~ 2배 정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국제회의를 좀 다니면서 ‘우리의 농촌이 가야 할 길이 이런 거구나.’ 이런 생각을 해서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진주에 오면서 제가 온 길을 설명해 보면, 여기 창녕에서 오면 합천을 거칩니다. 그 다음 의령을 거칩니다. 그 다음 함안을 거쳐서 구도로로 해서 진주로 들어옵니다. 들어올 때 대부분의 길은 요새 사람 이름들이 붙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들의 이름이. 제가 사는 창녕은 창녕 조씨들의 고향입니다. 창녕 조씨 하면 혹시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 남명 조식 선생님이 사신 바로 그 세진마을, 거기가 바로 창녕 조씨들의 세거지입니다. 제가 그 마을에 들어가서 지금 5년 3개월을 살고 있는데, 그 마을의 세진이라는 말도 바로 ‘세상의 나루터’입니다. 그러니까 남명 조식 선생님의 제자였던 한강 정구 선생께서 창녕 현감을 할 때 그쪽에다 이름을 세진이라 지어줬으니까 역사적인 이름이죠. 그래서 거기를 거쳐서 의령으로 오게 되면 누구를 만나게 됩니까? 바로 곽재우 선생의 생가와 표시가 보입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도 바로 그 입산이라는 동네를 거칩니다. 그렇게 해서 쭉 따라오면 진주 합천의 정인홍,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로서 정승도 오래 하셨고, 임진왜란 때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주까지 와서는 2시간 전에 와서 진주성에 갔습니다. 정인홍 선생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지금 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 들어가 보면서 결국 제가 창녕에서 남명 조식 선생의 창녕 조씨 고향에서 차를 타고 넘어오면서 전부 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임진왜란과 관련되어 있는, 특히 진주성싸움에서는 진주 분은 아니시지만, 누굽니까? 천안 분, 김시민 장군과 같은 분이 여기서 목숨을 바쳤지 않습니까. 많은 자연과 뛰어난 정신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제는 진주가 선비라든지, 교육이라든지, 또 옛날 고도로서의 아주 뛰어난 자부심 이런 것들이 상당히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정신들의 지주, 고향 이런 것들이 굉장히 필요할 겁니다. 진주시청 홈페이지를 보면 저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서 나중에 발전을 모색하는 것을 봤습니다만은 어쨌든 진주는 저희 어릴 때는 여기가 글 좀 쓰고 공부 좀 하는 애들이 모였던 백일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진주에 와서 꼭 백일장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다 그 바닥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진주에 와서 우리나라 최고의 개천예술제 백일장이 있었지 않습니까? 진주가 이제는 물질적인 것과 산업화 과정에서 정신적인 것까지 결합이 되듯이. 내 마음속에 담긴 뼈의 경과는 사람마다 다 있을 겁니다. 진주에서는 조금 전에 얘기한, 제가 진주에 오게 되면 진주성에 가고 진주박물관을 거치는 것은, 바로 창녕이나 의령이나 임난 때 다 의병들이 있었거든요, 그 분들이 결국은 진주성 사수할 때 곽재우 장군은 김시민 장군을 돕고, 그렇게 다 따져보면 굉장히 큰, 우리가 경남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합천, 의령 조금 전에 내가 온 그 길이 진주성까지 오는데 옛날엔 다 무슨 길이었겠습니까. 뱃길이었습니다. 그렇겠죠? 그러면서 대한민국에 국가하천을 3개 가지고 있는 군이 있으면 말해보라 그럽니다. 국가하천은 창녕은 뭡니까? 낙동강이 있고 한강이 합류하고 남강이 합류합니다. 진주, 산청에서 내려오는 그 물이 남지, 기각나루터 거기서 만나고 또 한강은 거기서 만납니다. 결국은 지리산에서 흐른 물은 남강에서 사천으로 흘러가 바다로 만나잖아요. 근데 이 물이 또 어디로 갑니까? 마산, 창원을 거쳐 부산의 낙동강까지, 결국은 우리가 보면 옛날 그 뱃길, 나룻길을 따라 우리가 다 살아왔어. 지금은 뭐 고속도로도 있고 뭐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만은 그렇게 보면 옛날에는 모든 길목이 뱃길입니다. 그래서 정암나루터를 바로 곽재우 장군이 막아줬기 때문에 그 당시 진주의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 1차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바로 그런 거죠. 그래서 이런 곳에, 저는 해외에서는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에 대해 우포에 오는 분들에게 많이 물어봅니다. 여기 진주 분들은 여기 진주에 사시니까 그렇게 하지만, 최근에 인터넷으로 진주유등축제 보고 난 뒤에, 진주에 대해 인터넷에 글을 올려놓은 분들을 봤습니다. ‘마음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쓰는 분을 봤는데, 우포를 다녀가신 분을 저는 지극정성으로 모십니다. 왜? 그분들이 그냥 다녀가시는 게 아니고 거기 오셔서 아주 지극정성으로 그런 마음들을,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재방문을 해 주십시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창녕군이나 시에서 좋은 시설을 만들어 놨지만 반드시 우포를 방문하시는 분은 가능하면 농촌의 민박이나 아니면 작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펜션 같은 곳에서 주무시도록 합니다. 다소 도시사람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거기 와서, 감 농원에서는 감 말랭이도 그 분들이 주시거든요, 그리고 또 신경을 써 줍니다. 바로 그런 정과 마을의 공동체를 이제는 좀 더 깊이 느끼고 살릴 수 있을까. 그래서 우포늪 보전할 때는 지역 주민들이나 창녕군에 많이 부딪쳤지만 지금은 이 우포늪을 통해서 지역경제도 살리고, 따오기도 복원해서 농산물의 브랜드도 높이고. 이런 것들을 더 하려고 하면 한 사람이 거기에 10년, 20년, 30년, 40년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제가 40년을 목표로 하고 우포늪에 살고 있습니다. 저도 진주성 같은,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그래서 저는 진주를 그리워하고 순천을 그리워합니다. 창녕에 늘 사니까. 그리고 진주에 계신 분들은 우포나 순천만을 갔다 오시면 속이 시원하고 후련해지실 겁니다. 근데 여기 노인들이, 참 진주시민들은 좋을 것 같아요. 여기에 산책로가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오늘 2시간 전에 와서 한 바퀴 진주성 산책을 하고 박물관을 보면서 나이 드신 분이 산책을 몇 분이 하시길래 보면서 ‘진주는 참 다른 창원이나 마산 같은 도시보다 좋은 것은, 나이가 드시면 참 산책하기 좋은 이 곳이 있어서 참 살기가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좀 가졌습니다. (동영상을 보면서) 예, 하동 화개입니다, 화개. 그러니까 이게 섬진강은 아니고 화개천입니다. 쌍계사 스님 있는 데. 여기에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여기 마을에 있는 분들하고 여기 살러 오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펜션도 하고 갤러리도 하시는 분들. 이 분들이, 이 동네 여기서 잠을 잤습니다. 여기 작은 이 분도 멀리서, 서울에서 살다가 몇 년 전부터 오셔가지고 여기 작은 펜션을 하면서 사십니다. 이 동네 분들이 모여가지고 저보고 한번 와 달라 해서 갔는데 뭘 하는가 가 보니까, 보통 하동에는 봄에 벚꽃 보러 많이 오고 가을 단풍철 되면 많이 오십니다. 그런데 그 지역 분들이 봄철 단풍철 말고 날이 추워지는 이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모여가지고 한 몇 년 준비하셔가지고 이번에 제1회, 이게 혹시 뭔지 아시겠습니까? 다음 그림 보면 대충 아실 겁니다. 이게 뭔지 알겠습니까? 여기 밑에 답이 있죠, 예, 차꽃 보신 분 손 들어보십시오. 차가 꽃이 있었나 하시는 분들, 거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래, 처음 봤다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이 차꽃은 어떻게 되냐면, 찻잎은 다 보셨죠? 보러 오는 축제를 만든 겁니다. 지금 이것은 하동군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선에 그 지역 분들이. 우리는 겨울에 비수기잖아요, 그때 마을의 작은 민박이나 음식점이나 거기에 있는 예술가들 다 모여가지고 준비를 한 것이 이 차꽃을 보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죠. 그래가지고 자기 마을의 보물이죠, 저도 가서, 차꽃은 전에 친구가 있어가지고 옛날에 본 적은 있습니다만은 이번처럼 차밭을 가면서 일일이, 차밭의 잎 아래쪽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볼 수가 없죠. 그런데 이 차꽃을 이번에 화가를 30명 초정해서 차꽃을 그렸는데 이걸 가지고 지금 70점의 그림이 이번에 나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차밭에다가 전시를 했습니다. 전시를 하면서 거기에 다문화가정을 불러다가 결혼도 시켜주고. 바로 그런 행사를 하면서 지역 분들이 이번에 이 행사의 가장 귀한 것은 30만원, 100만원씩 다 냈답니다. 이번 행사를 이쁘게 했는데 이것은 앞으로 제1회지만 내년이나 후내년 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지역에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축제를 만들어서 지역을 알리고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게 우리 시대의 새로운 화두입니다. 정부가 해주고, 지자체가 해주고 이게 아니라 우리 작은 마을이라도 작은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웃 일본에 유럽만 해도 가보면 그 마을마다 심지어 그 에딘버러나 영국의 어떤 마을은 어떻게 하냐면, 거기는 축제를 하면 주민들이 다른 데를 다 놀러가거나 어디 친척집으로 다 가버립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미루나무가 이 물안개 밑에 물속에도 있다는 겁니다. 우리 세상은 하늘만 있고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도 진리나 진실과 아름다움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사진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이 우포늪에 살면서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새벽에, 오후에 2번씩 늘 관찰을 합니다. 그러고 그것을 페이스북에다가, 저는 이미 페이스북 친구 5,000명이 넘어서 친구들이 막 줄을 서 있는데, 다 그것은 못하지만은, 어쨌든 이 아름다운 광경을. 혹시 여기에 사진에 취미가 있거나, 나이가 드실수록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평생을 공무원도 하고, 교사도 하고, 때로는 농업도 하신 분들이 그럼 나이가 들면 할 일이 없느냐? 있습니다. 그냥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집 앞에서, 동네에서 모여가지고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간단합니다.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내 동네, 내 마을, 내 고장의 아름다움을 한번 찍어보십시오. 그거 하나만 해도 매일 내가 사는 동네가 달라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을 손자에게 보내줄 수도 있고, 내 아들이 먼저 전화오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내 며느리한테도 보내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요즘 말하는, 어려운 말이긴 합니다만은, ‘소통’입니다. 저는 요새 어른 강의를 제가 좀 합니다. 노인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그냥 자식이 전화 오기만을 바랄 게 아니고 내가 예쁜 내 고향, 다 자식들은 어릴 때 추억이 있습니다. 그 감나무 밭에 감도 그렇고. 오늘 제가 의령서 오다가 차를 일부러 의령 거기다 세웠습니다. 보니까 지금 감을 땁디다. 근데 그 밑에 저수지 뒤에 감나무 밭이 있는데 잎이 다 떨어지니까 뭐가 있습니까? 감만 지금 열었는데, 지금 그 광경 어떻습니까? 너무 아름답거든요. 그래서 제가 거기서 10분을 촬영했습니다. 그것도 저녁에 가서 제가 오늘 진주 강의 왔다고 페이스북에 올릴 겁니다. 그러면 제 페이스북 친구들이 그 밑에 댓글을 답니다. 어떻게? 내 고향의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서울사람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대구사람, 부산사람 못 봅니다. 근데 제가 잠시 진주 오는 가운데 그 의령에 저수지 뒤에서 감을 따는, 그게 누굽니까? 요새 젊은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찍어놓은 사진에 비춰보면 연세가 많은 할머니들이 거기에 감을 따고 있는 거죠. 바로 그 이야기를 보고 손자들이나 그 다음 자식들이 고향을 또 한 번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전화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그래서 그것은 배워야죠. “나 그거 모른다. 느그가 해라.” 이러시지 말고 반드시 자식이 오면 자식에게 배우십시오. 폰을 어떻게 하는지,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그런 걸 딱 배우셔가지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삶의, 앞으로 100세까지 사신다는데 가만히 앉아서 매일 고스톱 치고 앉아있을 겁니까? 100원짜리, 50원짜리 그것만 하시지 말고 동네 다니시면서 곳곳에 사진도 찍으셨다가 손자에게 보여주면서 “이거 어떻게 찍어? 좀 더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손자가 너무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그 얘기는 조금 있다 할 겁니다. (사진 보면서) 겨울에는 여기 또 철새가 온다고 제가 정부에 건의를, 철새가 오면 외부에서 학생들이나 사람들이 철새 보러 많이 옵니다. 근데 이 분들이 물고기 잡으러 가면 어떻게 됩니까? 새가 다 날아가 버리죠. 그렇게 되면 오신 분들이 ‘우포늪에 겨울 철새 보러 왔는데 왜 새가 없냐?’ 그 불만들이 막 일어납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겁니다. 환경부에다가 건의를 했습니다. 겨울 철새 기간 동안에 새가 많이 있는 일정한 지역은 정부가 보상을 하고,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4개월 동안, 그러니까 12월부터 4월까지는 보상을 합니다. 한 달에 500만원 정도 보상을 해줍니다. 그러면 옛날에 그걸 반대하시던 분들이 지금은 저보고 지나가면 커피 대접도 하고 밥 먹고 가라고 합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 세상이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산업화하고 공장 짓는 것이 가장 뛰어난 것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유럽이나 이런 나라들도 환경을 많이 파괴했지 않습니까. 영국, 프랑스, 독일 다 산업혁명 하면서 많은 자연을 훼손했습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초등학교 교과서에 템즈 강. 우리 배웠죠. 그때만 해도 그 템즈 강 물이 엉망이었거든요. 근데 지금 런던 가보면 템즈 강 물을 깨끗이 해놔가지고 아름다운 강으로 만들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옵니다. 그만큼 산업화하면서 파괴했던 걸 살렸죠. 우리도 이제는 길이 뻔합니다. 그동안 산업화하면서 많이 훼손했던 자연을 회복하고 더러웠던 물들 살리고, 오늘 잠깐 이창희 시장님하고 시장님 방에서 차를 마시는데 시장님 계획이 있습디다. 옛날에 진주 탈것 중에 유명한 게 있었는데 혹시 기억나는 게 있습니까? ‘자전거도시’ 왜냐면 앞으로는요, 자원이, 2008년 람사르총회 할 무렵에 환경수도를 선언했습니다. 그때 인천항공공사 사장인데, 박원수 시장이 창원시를 자전거 국제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자전거 타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너무 도시 안에, 창원은 진주하고 다릅니다. 분지도시가 되어가지고 안에 대기오염이 너무 심합니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그때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가 환경운동을 하니까 창원시장님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기오염을 줄이는 방법은 이 도시 안에서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소.” 그걸 제가 경남신문에 글을 썼는데 그걸 보고 저랑 독일을 같이 가게 됩니다. 저랑 독일에서 일주일을 같이 머물면서, 독일은 시장, 부시장, 대학교수들, 배운 사람이 먼저 전부 다 자전거 타고 다닙니다. 독일의 도시들이 명품도시가 되는, 바로 BMW가 있는 도시, 거기도 옛날에는 고급도시인데 지금은 환경수도가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산업도시를 이제는 깨끗한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 지금 독일이나 유럽의 방향이거든요. 그래서 아마 이창희 시장님도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 진주는 남강을 비롯해서 옛날 폐선 있지 않습니까? 그쪽을 가능하면 시민들이 자전거도 타고 쾌적하게 사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참 귀한 말씀이다, 그런 얘기를 드렸는데... 이제 이미 우포나 이런 것들은 이 자체 환경이 굉장히 중요한 하나가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91년도에 낙동강 페놀사건 이후에 제가 마산, 창원지역의 환경운동단체 대표였습니다. 대표였는데 그때 환경부와 협력해서 이런 우포늪을 보존하지 않으면 낙동강가에 공장들이 사고가 났을 때 우포늪이나 옛날 있었던 늪이 있으면 그쪽을 거치게 되면서 일정하게 정화를 하거나 그 사고를 좀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보전이 돼야 된다, 뭐 이런 주장을 해서 지정이 되고, 그 다음 여기를 보시면 1998년 3월달에,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에 국제협약, 람사르협약에 등록이 되고, 습지 보호지역이 되고, 지금은 문화재청에서 문화재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까지 했습니다. 이걸 지정하고 세월만 흘러가면 되느냐, 그렇지 않다, 여기 안에 어떤 녀석들이 살고 있는지 그 당시에 내가 다 기록을 했습니다. 근데 대한민국에 사진 잘 찍는 사람들, 그렇게 찍고 싶어하는 것이 담비입니다. 혹시 담비 아십니까? 들어봤습니까? 호랑이 잡는 잠보 들어봤습니까? 옛날에 어른들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 정말 저는 이 녀석이 호랑이를 잡겠네 했는데 우포에서 제가 5년 동안에 3번을 만났습니다. 담비가 3마리가 살고 있는데 요 친구들이 어떻게 하나 보니까 멧돼지를 사냥합니다. 근데 이 친구가 얼마나 빠르냐면은 20미터 된 높이에서 바로 뛰어내립니다. 그 순간이 날다람쥐보다 더 빠릅니다. 그래서 제가 페이스북에 동영상으로 올려놨어요, 최근에 움직이는 걸. 그 정도로 이렇게 자연이 잘 보전되는, 야생동물들이, 그리고 독수리도 지금 겨울 되면 밥을 줍니다. 지금 이렇게 몽골에서 날아온 넘버까지 달려 있죠. 고성에 또 한 분이, 고등학교 선생님이, 독수리 밥을 주고 있어 많이 남쪽까지 옵니다. 왜 이런 걸 하느냐. 이미 우포 같은 데는 보호지역이고 그 주변에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독수리가 같이 살면 좋겠다 해서 제가 밥을 주는데, 이미 아프리카 같은 데는 ‘벌천레스토랑’이라고 야생동물들을 위해서 지역사람들이 100개의 식당을 만들어 놨습니다. 근데 얘들이 먹는 거는 다 죽은 것이기 때문에 쓰레기 청소부예요. 우리 식육점 가면 비계 같은 거 많이 남지 않습니까, 그걸 다 트럭에 실어서 아침마다 식사 대접을 합니다. 근데 이렇게 해놓으니까 몽골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관광 상품이 됩니다. 지금 철원에서는 이게 관광상품이 돼서 난리입니다. 사진찍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이 친구 사진 하나 찍으려고, 그리고 그 지역 마을은 이 독수리만 밥 먹여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게 합니다. 자, 혹시 이 새 아십니까? 황새입니다, 황새. 지금 이 새도 사라져버렸죠, 거의. 이 새가 지금 우포늪에 왔는데 이 밑(그림)에 보십시오. 뭔 색깔이 달려 있죠? 근데 이 새가 재미납니다. 일본의 ‘도요까’라는 곳에서 이 새가 사라져서 30년 만에 복원했는데 2년짜리 암놈이 우포로 날아온 거예요. 제일 처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던 봉화마을 아시죠? 거기가 친환경 농업 하거든요. 거기에 미꾸라지하고 드렁허리 들어봤습니까? 드렁허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거기 갔다가 우포를 찾아왔어요. 그 밑에 보면 30년 동안 1,000억을 들여서 복원한 황새입니다. 우리 따오기처럼. 복원해가지고 80마리 중에 한 마리가 이렇게 대한민국으로 날아온 겁니다. 그럼 여기가 그들이 먹는 먹이가 좋은 거예요. 여기(그림)에 있는 새들도 국제적으로 시베리아에서 온 귀한 새들입니다. 이런 새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찾아오는 겁니다. 순천만에는 ‘흑두루미’라고 있습니다. 갈대하고. 그거 보러 가지 않습니까? 겨울 되면 흑두루미 보러 다 갑니다. 근데 거기는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서 지역에 있는 주민들이 겨울 동안에는 산불 감시요원처럼 전부 다 고용을 합니다. 흑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럼 거기 사람은 트럭만 딱 길에 막아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잡비 벌어 쓰라고 순천시에서 돈을 들여요. 그러면 거기에 농사지은 것을 다 순천시가 사들입니다. 그 중에서 허드름한 것은 새에게 다시 먹이를 주고 좋은 것은 전부 다 쪼그만하게 쌀로 만들어 판매를 합니다. 그러니까 쌀값이 비쌀 수밖에. 이번에 농민 한 분이 다치셨는데 그 분이 주장하는게 쌀 한 가마를 21만원 해달라는 거지 않습니까? 근데 지금 현재 우리 한국 농업이 어려우니까 순천시 같은 경우 농민들에게 충분히 쌀을 비싸게 사서 조그마한 포장지에 넣어 300만명 관광객에게 파는 겁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뭐 때문에? 이런 귀한 새들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포늪의 미루나무, 제가 아까 얘기했던, 요즘 물안개가 끼는 장면입니다. 이런 걸 보기 위해서 서울 같은 데서는 저녁이 돼서 하룻밤 자야 됩니다. 그럼 우리 동네 펜션에서 자고 아침에 이 물안개를 보러, 우리는 흔하지 않습니까, 물안개, 그러나 그  분들에게는 굉장히 귀한 거죠. 이런 것은 물안개가 낄 때만 거미줄이 이렇게 수십만 개가 있습니다. 낮에는 안 보이죠. 이런 것들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 관광자원입니다. 조금 전에 얘기했던 ‘저어새’라고, 이런 아름다운 새들을 보러 많이 옵니다. 해질 무렵이 되면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드러나죠. 그래서 저녁하고 아침에 꼭 와야 되고, 그렇게 되면 도움이 됩니다. 자, 여기를 보시죠. 요즘에 우리 동네는 어떻게 합니까? 농민들이 볍씨 그대로 두면 기러기가 오기 때문에 여기에 정부가, 또 창녕군이, 생물 다양성계가 돈을 지급합니다. 평당 얼마씩. 저는 이 사진을 참 좋아합니다. 무슨 사진입니까? 다 아시는 사진이죠? 공감하는 사진. 우리 동네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지금 모내기 해놓고 비료 뿌리는 장면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제일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고향 아버지 모습이고, 노을이 지는, 바로 이 우포늪입니다. 여기 이 옆에 있는 농가의 할아버지가 아까, 근데 여기에 조금 전에 그런 새들이 와서 농민들이 해놓은, 추수하고 나면 먹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정부에게, 환경 운동가기 때문에, 양쪽을 다 만족해야 합니다. 한 쪽의 자연도 만족하고 거기 사시는 분들에게 충분히 이들과 공존하면서, 옛날에는 다 공존했잖아. 우리 집에 제사만 지내도 어떻게 했습니까? 제삿밥 중에 일부 문 앞에 내서 까치도 먹으라고 다 내놨죠. 그렇게 우리는 공존하며 살았던 아름다운 민족들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산업화하고 그러다 보니까 인심이 다 각박해져가지고 요즘에는 오히려 이 짐승들, 고라니, 멧돼지 때문에 막 고민하는 분들이 시골에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들도 살고, 안 되면 보상을 한다든지 해서 같이 공존하는 방식도 정부가 고민하고 지자체도 고민할 때가 되어서, 저도 그런 점을 고민하면서 사는 거죠.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이렇게 생물이 다양하게 살고 농업을 바꾸어야 됩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에 보십시오. 자연과 농업, 그리고 전통지식이라는 게 어떤 건지, 이게 오늘 제가 얘기를 하겠습니다. 전통지식은 어떤 거냐 하면, 국제회의에 가면 과거에는 미국이나 유럽이 주도권을 다 쥐었습니다. 근데 제3세계, 아직 농업을 하거나 아직까지 선진국이 안 된 나라에서도 ‘이제는 우리는 전통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라며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게 어떤 것인지 이제 우리가 볼 겁니다. 우리는 지금도 논을 가꾸고 있고, 논 안에 아주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고, 이런 곳을 산업화하면서 다 없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직접 농민들이 이제는 따오기 같은 것들이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들자... 이거는 지금 우리가 2005년도에 중국을 방문해서 도랑에, 옛날에 개울에 이렇게 살았습니다. 근데 요새 개울에 이런 모습 못 보죠? 그건 왜 그렇습니까? 미꾸라지 같은 것이 이제는 거의 살지 않으니까. 이제는 다시 하천을 살리고 하면 이게 마을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될 거다, 그래서 요새 도시에서는 자원봉사대가 많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농촌 마을에 와서 자원봉사하고, 이게 바로 따오기 복원센터가 됩니다. 우리가 중국에서 2008년 10월달에 따오기를 들여와서 2008년 창원에서 람사르 총회를 하게 됩니다. 앞에 청소년들은 다 우리나라가 10회이지만, 다 한복을 입었죠? 일본이 5회를 했고, 캐나다나 유럽에서 먼저 했기 때문에 어린이를 초정해서 국제회의를 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을 이제는 우리가 하면서 우리의 브랜드를... 자, 이 그림 한번 보여주면서, 누가 그린 그림일까 하는 것을 제가 한번, 옛날에는 어머니가 시집오는 순간 이름은 없어지고 택호로 변합니다. 우리나라 민법에는 어떻습니까? 이혼을 하게 되면 재산을 반분하게 되어 있죠? 그런데 우리 시골에 가보면 다 집은 어머니 집입니다. 남자 이름은 없어요. 관습법에 의하면, 이 집 주인은 전부 택호를 가진 어머니 집입니다. 그렇죠? 어쨌든 왜 이런 걸 마을에 들어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렸겠습니까? 일본은 80이 될 때까지도 마을 해설하고, 그 분들이 마을을 자랑하고, 마을에서 선생님이 됩니다. 지금 여기요, 80 된 노인도 얼마든지 자기 마을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뭘 할 수 있을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새끼 꼬기는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뭐 할 수 있다, 다 얘기합니다. 꽃 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고, 냉이도 캘 수 있고. 바로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어가서 “그럼 앞으로 우리 마을에 따오기가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다 그랬습니다. “우리 그라믄, 따오기가 살 수 있도록 옛날 농법을 한번 해보자.” 그래서 제가, 아까 세진이라고 했죠? 세상의 나룻대에 들어가서 정부에다가 건의를 했습니다. “우리 마을은 람사르 총회나, 국제회의라던지 이런 시범마을을 한번 만들어 봅시다.” 하니까 환경부의 공무원도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다, 한번 만들자.”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리 람사르를 만들고 싶다고 중앙정부가 나서도 되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아까 화개마을처럼 “우리가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한 것이 이 람사르마을인데 이제 여기에서 참 재미난 게 나옵니다. 우리가 람사르마을을 만들겠다고 환경부에서 기획을 하니까 스위스에 있는 람사르 총장이 직접 우리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환경부장관하고 방문해서 결국 우포늪하고 제주의 동백동산이라는 두 곳을 람사르 시범마을로 지정했습니다. “우선 시범적으로 한번 해봅시다.” 그렇게 해서 2015년 올해 5월달에 제12차, 우루과이에서 람사르총회를 했는데, 여기서 람사르도시, 람사르마을 인증제가 국제적으로 통과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에서 법을 만들어야 됩니다. 어떻게 하느냐? 람사르도시인증 후보지를 선정하고 ‘앞으로 이런 마을은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마을이다’, 여기에 사실 제일 반대한 나라가 일본입니다. 왜 반대했겠습니까? 일본은 다른 뜻이 아니고, 2008년 람사르 총회 할 때 한국에 와서 공동으로 자기들이 제안한 마을 이름이 한 개 있습니다. ‘사토야마’, 우리말로 하면 ‘마을 만들기’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자기들이 국제적으로 알려놨는데 람사르마을이 돼버리면 국제적으로 유네스코 마을처럼 위상이 높아지니까 반대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번에 다행히 일본을 설득해서 이런 국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바로 이 4군데를 우선에 시범마을로 지정을 합니다. 제주도에서, 제주도는 참 자연으로 먹고사는 곳이에요, 자기들이 먼저 신청을 합니다. 그래서 여기 우포늪이나 대암산 용늪 같은 데, 순천만은 이번에 공모신청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외국에, 미국이든, 유럽이든 각 나라마다 보호지역 마을들이 스스로 마을을 복원하고 사라진 종을 보호하고, 또 그러면서 환경보전에 주민들이 앞장서게 될 겁니다. 농촌은 FAO, ‘농업자연유산’이라고 그런 것도 있습니다. 세계적, 국제적 네트워크, 진주에서 경남으로, 한국으로 그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문화 네트워크를 만들면 세계 유네스코나 문화도시로서의 국제회의를 진주에서도 만들 수가 있죠. 바로 세계화라는 것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여기에서부터 세계화를 만드는 겁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가 나아가야 될 길이죠. 우리 여자 이장님이십니다. 뉴스의 초점이 됐죠. 제주 동백동산의 이장님인데 두 분 다 이장님이 중앙방송에 인터뷰도 하고 다큐도 만들어지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변해갑니다. 자, 여기 보십시오. 제가 예술가들을 불러다가 우리 마을의 우포를 잘 찍어서 마을 담벼락에, 이것보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이게 뭡니까? 콩 말리는 거 아닙니까.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집에서 어머니가 나오셔가지고 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나이가 80 된 할머니가 나와서 우리 마을 자랑인 콩 말리고 메주를 만들고, 이런 것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아이템이라는 거죠. 여기 우리 마을 첫 캠프할 때 누구를 데려왔을까요? 보통 우리 도시의 어린이들 많이 데려오죠? 저는 여기 제안을 했습니다. 다 손주들입니다. 마을 캠프할 때 제일 중요한 손님이 처음에 손주입니다. 자기 자식들은 마을에 대한 향수가 있고 추억이 있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지만 손주들은 명절 때 와서 뭐합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세배하면 돈 주는 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마을에서 3박 4일씩 캠프를 하면, 이거 뭡니까? 양파를 가지고 우리 마을 어머니가 염색을 한 겁니다. 선생이잖아. 마을회관에서 손주들이 오니까 할머니들이 옛날에 했지만 지금은 안 하시던 묵도 하고 두부도 하고. 마을의 공동행사를 하면 이걸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손을 움직이게 되고, 그럼 손주도 같이 보고 배우는 겁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교육이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옛날에 다 가정에서 배웠거든. 이런 것들을 누가 해야 됩니까? 학교 선생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죠. 우리 마을에서 어머니들이 손자들 데리고 하셔야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 요즘 역사 얘기 많이 하시는데, 저는 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역사입니다. 지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마을사라 합니다. 우리 마을에는 마을 달력도 만들고 마을사를 만들었습니다. 누구를? 한 사람, 한 사람 할머니에 대해서, 다 그 분이 살아온 삶을 우리는 만들고 있습니다. 열심히 농사짓고 자식들 공부만 시키면 다 끝나는 겁니까?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나도 내 인생의 내 이름을 찾아야죠. 김말순, 김덕순이는 우째 살았다, 왜 김시민 장군과 곽재우 장군, 남명  조식만 우리 역사에서 나와야 됩니까. 바로 내 가정사, 내 마을사, 거기에서 내 자신에 대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저는 지역사, 마을사를 먼저 가르쳐라! 남명을 가르치고 내 할머니를 가르치면 아이들은 바른 길로 갑니다. 근데 좀 죄송한 얘기지만, 국사는요, 언뜻 잘못될 수 있어요. 임금이 힘이 세면 “뭐 고쳐라!” 이런 것도 나올 수 있잖아요? 우리 그 훌륭한 정조 임금님도 뭐 했습니까? 일부 뭘 고치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권력이 강해지면 자기에게 불편한 얘기가 있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마을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을에서는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제대로 살았는지 다 나옵니다. 그건 글로가 아니라 구전으로 나옵니다. 누구네 집의 엄마는 어떻게 살았고 아버지는 어떻게 살았고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았고, 그 분은 돈을 벌어서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을 했고, 다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는 국사를 가르칠 수밖에 없지만, 마을에서는 우리 마을에 대해 가르치면 좋겠다. 우리 손주들이 마을 캠프를 하고 나서 딱 이겁니다. 이거 누가 만들었습니까? 딱 둘러보더니, 우리가 뭔가 선물을 줄 게 없을까 둘러보더니, 문패가 없다는 거야. 옛날에 문패가 다 있었죠? 요새 집에는 문패가 잘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 문패를 만드는데 애들이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잘하는 것, 할아버지가 잘하는 이야기를 여기 딱 썼습니다. 근데 이게 바로 진주시의 평생교육에 대해 얘기했는데, 일본의 ‘니시노미야’라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평생교육도시가 있습니다. 거기는 조그마한 유치원생하고 80 먹은 노인하고 연계가 되어 있습니다. 80 된 노인이 유치원생하고 같이 삶의 모습, 살아온 문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물어봅니다. 요즘에 우리는 당산제도 잘 안 지내지만 여기서는 당산제도 지냅니다, 아이들이랑. 이런식으로 자연스럽게 캠프를 통해서 우리가 변하는 거죠. 11월 1일이 되면 이렇게 동네에서 풍어제도 지내고, 옛날에는 지냈어도 요새는 귀찮아서 안 지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나 지자체가 우리 유등축제 하듯이 작은 마을이 축제를 통해서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문화예술인들도 찾아와서, 저는 이제 도시가, 큰 지자체나 행정이 큰 것도 좋지만 마을마다 작은 아이템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지도.. 제가 이제 마지막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2년 후 2017년도에는 따오기 비상, 중국의 사진입니다만은 참 이쁘죠, 가을에. 창녕의 유물이 동경박물관, 도쿄박물관, 아시아박물관에 국보로 4점이나 지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는 그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지켜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국민이 똑똑해야 되고, 어린이가 똑똑해야 합니다. 우리도 훼손된 자연을 살리고, 필요하면 농업도 살리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작은 텃밭도 하고, 아이들에게 농업을 가르치는 일이 어머니께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동네 어린이조차도 어머니와 할머니와 같이 평생 같이 학습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지금 여기 보면 따오기 센터입니다. 여기에 따오기가 나갈 겁니다. 근데 여기도 나갑니다. 근데 여기는 정부에 제가 건의를 했습니다. 여기는 옛날에 늪이었습니다. 여기를 복원 좀 합시다 해서 지금 180억 얻어 복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여기에도 농업을 하면서 유기농이나 아니면 관광객들이 와서 농산물도 사고, 남은 이 지역은 가능하면 축산도 하고 농업도 할 수 있는 지역으로 변해서, 우리도 소를 풀어서 지역 경제도 살리고 한다면 작은 몇 개의 마을이지만 미래의 환경운동가로서 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이 마을에 삽니다. 강의를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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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원 평생학습팀(055-749-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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