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가기 메뉴


시민성장과 지역발전을 지향하는 평생학습도시 진주


강좌다시보기

동영상 파일 : v9.wmv

진주시평생학습센터의 강좌 다시 보기입니다. 동영상 버퍼링으로 인해 약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제목 : 제 57 회 진주시민 교양강좌
  • 개최일자 : 2014년 12월 11일
  • 강사 : 이준희

                제 57회 진주시민교양강좌
              주제: 한국 대중음악 고전기의 산실, 진주
  
             ㅁ 일시: 2014년 12월 11일 (목요일)
             ㅁ 시간: 오후 3시
             ㅁ 장소: 진주시청 시민홀(2층)
             ㅁ 주최: 진주시       

 

여러분 조용한가운데 경청해주시고 강사님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소개해주신 이 준희라고 합니다

 

진주를 제가 자주 옵니다 이런 저런 일때무에 자주 오고 KBS가요무대 있찌 않았습니까? 자문 위원회로 했기에 그때 왔다가 시청과 연이 되어 이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국대중 음악 고전기의 산실 진주가 그런 곳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뭍혀있던 사실이 이니고 익히 알고 있는 것일수도 있는데 편안하게 노래 들으시고 진행해보도로 하겠습니다. 이게 화면이 세티된것에 바꾸기가 곤란해서 약간 실제 그림보다 좌우로 퍼져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6월달에 참여한 전시인데요 한국 고전 삼선이라는 서울 에서 전시 했습니다 보신 바와 같이 33곡의 노래 선정이 됬고요 한국 대중 역사가 100년이 됬는데 1950년대 발표되었던 많은 사랑 받고 있는 뛰어난 노래를 선정했습니다 . 이 노래 몰고 첫번째가 낙화가. 두번째가 황선옛터 처녀 총각 목포의눈물 이런 노래 쭉 선정이 됬는데 33곡 중에서 진주와 관련된 노래가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 짚어보면 화양석은 진주에서 나신 분이고 목포의 눈물도, 애소의 소양곡도 진주 분이고 유명한 분이신것을 아실테고 이재호 선생이 진주 출신이십니다.이렇게 저렇게 진주와 관련된 노래, 진주와 관련된 노래들을 추려 보면 반이 넘습니다. 굉장히 많은 수거든요. 한국 대중가요기를 보겠습니다. 매일 신보에 실렸는데 알보라는 뜻이고 이 노래가 자품으로서 확인할수있는 최초의 가요입니다 일본곡을 따와서 온 노래이긴한데 내 후년 2016년이면 정확히 100년이 되는것이죠. SP음반 축음기 판 LP이전에 쓰이던것이 이것입니다. 축음기판의 시대가 1930,40 50년대 거의 일치합나디. LP1958년에 처음 팔렸다고 하는데요 . 그후 LP가 대세를 잡게되는 시기라고 하니까 지금도 자주 만날수 있는 이미자 남진 다 60년대 이후 가수입니다. 지금 띄어 놓은 음반은 대중가요 33선에서 진주로 소재로한 천리길입니다. 천리길 진주 이렇게 하는데 이노래를 통해서 더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죠. 진주로 소재로한 가장 유명한 곡이니까 들어보도록 할텐데요 잡음은 약간 있습니다. 오리지날이니까 간단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동안 들읈구 없었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우러북한 노래이기 했기에 금지곡으로 묶여 있기도 했쬬. 어떤 지역이 중요한 지역이다 하려면 그 고장 출신의 인물만으로 얘기 하기에 부족한것도 있습니다 공연 무대 이런것도 중요한데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음반회사가 진주에 있진 앟았고 서울에 있었고 지역에서 처음 부산에서 비로소 생기곤 한데 진주가 그래도 당시에 악극단들이 항상 빠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1937년의 기사인데요. 진주 극장이 없어졌습니까? 막 세워졌을떄 사진입니다. 진주 극장의 모습과 일치 새로 세우셨던 당시 사장님이라고 합니다. 철도가 지나가는곳에서 공연을하고 그다음 역에서 공연하는 식인데 .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것인데요. 현경석 일기가 유품이 발굴이 되어서 볼텐데 대충 글자가 흐려서 일기 내용을 보면은 먼저 통영을 갔다가 버스를 타고 진주로 왔다 20리 떨어진 곳에 팬들이 환영을 하러 나왔다. 남인수와 같이 공연을 했는데 미리 나와서 공연을 해주고 대대성황리에 공연을 잘했다 진주에서.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당시 많은 팀들이 진주에 와서 시민들에게 공연을 하고 어딘지 아시겠죠? 촉석루의 옛날모습입니다. 6.25때 촉석루가 불타지 않았습니까. 다시 재건한건데.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거의 같은 위치인걸 보면 여기가 포인트인가 봅니다. 이분이 남인수 선생인데 아마 고향에 왔다가 다른 동료분들과 함께 사진찍은걸로 압니다 .진주, 남강, 이런 가사가 들어간것이 굉장히 많은데, 촉석루를 알수있는 재미있는 노래가 있어서 준비를 해보았습니다.가사 알아들으시겠죠? 촉석루를 재건하는 소리, 1958,9년 그떄 나왔던 곡입니다. 진주 인물에서 남인수 선생이죠 1918년에 진주에서 나신분이고 18살떄 서울로 상경해서 가수가 되겠다고 44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뒤에서 진주 이곳에 묻혀있습니다. 남인수 라는 인물은 아마 1999년이었을 것입니다 한국 대중가요에서 가장 뛰어난 가수가 누구인가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한분은 이미자 한분이 조용필 남이남 남인수 입니다. 조용필 이미자 남인수는 한국 대중 음악계의 슈퍼스타라고 할수 있죠. 내 고향 진주라는 노래 유명한데요. 남인수 가수의 히트곡이 한두군데가 아닌데 내고향 진주라는 곡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향이 진주를 새악해서 특별히 작사 작곡을 한 특별히 내가 오랜만에 진주에 가서 공연을 하게됬는데 고향 노래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해서 만든 노래입니다. 1940 50 년을 관통하는 가수라고 했는데요 신곡을 하면서 10년 이상을 정상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거든요? 이미자 동백 아가씨 나오기 전에는 톱 가수라고 볼수 없었는데 1970년대 까지 활발하게 신곡 발표하면서 10년 정도는 할수 있다고 했지만 그 이상은 힘들거든요 남인수 가수는 38년도부터 해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1960까지 히트곡을 냈으니까 20년도안 정상 자리를 놓지 않은 가수라는 것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이분은 이재호라는 작곡가 분이십니다. 이분도 진주에서 나서 진주에서 자란 분이고요 진양호 가면 남인수, 이재호가 서있습니다 일본에 갔다가 경제문제로 귀국했는데 첫 작곡 발표한 나이가 19세입니다. 41세에 생을 마감하신 분입니다. 그 당시 우리 나라 문화 예술계의 해결했다고 하는데 이재호 선생님 사진인데요 이재호 선생이 이 진주 고등학교 에서 음악교사를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제자분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걸려있던 사진이라고 하는데요 인물이 출중해서 모델로도 사진을 걸어 놨다고 하는데 남인수 선생은 가수로서 독보적인 천재, 이재호 선생은 작곡 분야에서 천재라고 할수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작가로 볼수가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진주에 관한 노래를 많이 만드셨거든요 남강의 추억이라고 볼수가 있습니다. 이재호 선생의 곡이기도 가사 까지 직접 까지 쓰신 고향 남강에 대한 애틋함이 있었는가를 확인할수 있는 사실이죠. 양대 기둥같은 존재라고 볼수 있는데 해방이전에는 함께 활동할수 없었습니다. 태평레코드에서 전속 작곡가로 활동할수 있었고 그 경쟁사인 남인수오페 레코드에서 활동했기에 함께할수 없었죠. 해방후 드디어 함께했는데, 그때 함께한 노래가 무전열차라던가 남인수선생이 후기 히트곡이 이재호 작곡으로 알고 잇습니다. 보기 힘든 자료를 준비했는데요. 익숙한 목포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장면이 어떤 장면인거 같습니까? 영화의 한 장면이거든요? 카페 우리가알고있는 카페와 달랐습니다. 여기서는 술마시는 곳이었고요. 술 시중이라고 하나 여점원도 있었는데 카페에서 술 한잔하는 장면에 악사를 맛보기로 넣은건데 갓 21살 이재호 선생입니다. 유일한 영상 자료구요 1941년 영화 반달곰이라는 영화입니다 해방 이전 영화가 남아있는 영화가 많진 않습니다. 이런 카페같은 공간도 대중음악이 유통되었던 극장이 아닌 카페같은 곳에서도 대중음악이 있었습니다. 아까 들으셨던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셨는데 실제 이분이 실제 주인공입니다. 아버지께서 병이 걸려 서울로 갔는데 진주 출신이긴 하지만 진주에서 오래 사셨던 분은 아니구요. 진주에서 역시 필요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코디언을 주 악기로 사용을 하셨죠 빵모자 쓰고 활동했던 모습이 기억이 날겁니다. 한 영상 자료를 준비했는데요. 김정곤 선생이 노래 하고 있는데 그 옆에 지휘하는 분이 손목일 선생이시죠.굉장히 역사적인 영상인데요 1939년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배우들이 대사를 잠깐 주고 받는 대사가 나왔는데 일본어이기에 우리나라영화가 아닙니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 당시에 태평무대의 가장 경쟁이었던 오케레코드의 조선 악사단이 일본 순회공연을 합니다 상당히 공연이 성공적이기에 일본에 좋은 호평이 쏟아져서 섭외를 한거죠 우리 영화도 까메오식으로 출현해주면 좋겠다. 해서 영화에 한장면으로 넣은겁니다. 거기서 마침 그런 숄르 하고있었다 해서 넣은거죠 촬여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일기 주인공이 상세하게 적었는데 이 영화 한 장면을 위해서 날을 샛는데 허탈했다고 했느데 명분 나오지도 않는구나 해서 그랬습니다. 김 정호 선생 다시 나오고요 카메라를 많인 받은 분이데 여기 활동한분들이 다 가수였죠 뒤에는 목포의 눈물 부른 선생에서 같이 춤을 추며 공연했던 분입니다 한국 대중 관련 영상이라는 겁니다. 남인수 이런 분르의 모습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죠. 한분 더 얘기를 해야할거같은데요 이제호 남인수 분은 진주에서 나서 진주에서 자란 분이구요 손 선생은 나중에 서울에 가시는데 , 이분은 문호월이라는 분입니다. 이분도 이사를 가십니다 경상북도 김천이거든요? 김천에서는 이분을 김천사람으로 칩니다. 이분 노래도 김천노래로 서있고요. 사실 진주에서도 이런 분들이 생기면 좋을텐데 아쉬움이 있어서. 지금은 노들갑변이 민요인것처럼 알고 있는 분도 있을겁니다. 작사 작곡이 있는 대중 가요입니다. 노들갑변이라 비슷한 태평가 있죠 닐리리아 태평가도 대중가요입니다 1930년에 신민요라고 타이틀 걸고 나온 성공적인 곡드은 민요처럼 정착을 해버린 곡들이 상당수가 있죠 노들 갑변이 히트를 하면서 20년대 중반에 전성기를 열게 되었던 곡입니다 원래 음반 사실대로 박보영이라는 분이 불렀는데 건반출신인데 박보영 오리지날 노들 갑변은 아니고 가사를 바꿔 부른 신작 노들 갑변 을 잠깐 들어볼까 하는데요. 들으면 민요라고 해도 충분히 우리나라 전통적인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노래입니다. 신민요 가수로서 이화자라는 가수가 있거든요 그분 노래를 잠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다른 케이스의 진주 인물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이분이 이홍준이라는 작곡가 선생님이십니다 대중음악 작곡가로 하시다가 음악 교육자로서 많이 활동을 많이 했고 교가를 뒤져보시면 이홍준 작곡이라고 하는게 많을것입니다 남인수 선생님이 봉래초등학교 출신인데 봉래초등학교 교가도 이홍준 작곡가가 지은 곡이더라구요.진주가 교육이 굉장히 유명한 곳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경남에서 공부를 해야겠다 라고 하면은 남해라던가 고성이런데 사신분들은 진주로 유학 보내는 경우가 많죠 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진주에서 음악 교사로 활동도 하셨고 대중음악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수 있겠죠 . 교육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고 개천예술제떄 음악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자료들도 남아 있습니다. 이홍준 작곡 발표회 음악가로서 활동하고 있던 다잇에 자료입니다. 이런분도 있습니다. 이분은 한국 대중 음악의 고전기는 아닌데 60년대 이후에 활동하신분입니다. 작곡가 이봉조 입니다 이분도 같은 케이스입니다 고향은 남해인데 진주에서 학창시절 보내다가 대학 간분인데 진주 고등학교 나오셨죠 중학교에서 음악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이재호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제자분들께서 책에 실었는데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죠. 이재호 선생님이 노래를 한명씩 시켜보는데 이봉준을 시켜봤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탁성이었다고 해요 그당시 유행했던 노래를 잘 뽑아서 했더니 봉조보다는 그학생이 잘한다고 했는데 이재호 선생님은 아니다 목소리는 탁성이지만 음악적인 기본은 이봉조가 재능이 있고 잘한다 라고 했고 그 동기들을 보면은 이재호선생님께서는 음악적 기미가 그때부터 보였다고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1960년대에 현민을 만나서 신곡을 많이 냈고요 . 70년대는 국제 가요제에 많이 참여를 하셔서 우리나라 음악을 알리는데에 공헌을 많이 하신분이죠 칠레라는 나라를 알게된것도 이봉조 선생의 공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칠레가서 입상하니까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고 칠레가 있구나 알게된거죠. 진주 인물의 간단한 자료들 음원자료들을 준비해봤는데요. 시청에서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해주실적에 생각했던게 진주가 가지고 있는 대중 음악 사상을 충분히 활용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인물들 외에도 많이 있고요 지금까지 보더라도 한국 대중 음악에서 이렇게 굵직한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비중이 좀더 높아진다고 볼수 도 있겠죠 음악적 자원이 풍부하기에도 불구하고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문화적 자산이 워낙 풍부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일제 시기에 발목이 잡혀서 그런거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재호선생님도 그렇고 남인수 이런분들이 친일 시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것이 사실입니다. 일제 강점기 말에 그당시 대동전쟁이라고 했죠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인기있는 영향이 있는 가수와 작가들의 할당이 떨어지는거죠 그당시에 전쟁을 선전하고 미화하는 궁국가요를 상당히 많이 짓고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서 가수들이 그런 곡들을 많이 불렀던것도 사실입니다. 남인수 가요제를 하다가 이름도 남인수를 빼고 헀다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요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해봅니다 . 우리가 어ᄄᅠᆫ 인물을 전체적으로 평가할적에 특정한 시기에 행적만 가지고 얘기하는것은 곤란하죠 박정희라는 인물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대통령이 포인트거든요 근데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라고 했을 때 젊은시절 일제시대때 일본군 장교였다 이것만 보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분들이 보통 친일파죠. 대중음악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이런분들은 전체적으로 평가했을적에 동일한 선상에서 얘기할 수가 있는가 그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면에서 의미있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 것이 몇 년전에 활동하다가 활동이 중단됬습니다만은 대통령 직속 이후로 친일파 위원회라는 곳에서 조사를 했습니다.광범위하게 조사를 했고. 전국공식 입장이 거기서는 대중음악을 인정하면서 대표적인 몇몇 인물을 얘기했습니다. 일정한 책임이 있는것이 아닐까?남인수 이재호 선생같은 분들은 제외가 됬거든요. 전체적으로 봤을때 책임을 질만한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거죠.어느 정도는 전국 공식 입장이 정리가 되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무언가를 이제 하셔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진주외에 음악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 목포 부산 이런 지역들이 있습니다. 목포나 부산같은 경우는 근대라는 키워드와 많이 맞물려 있거든요 항구도시로 외부와 교류가 많았던 곳 이기도 하고요 . 근대문화 유산에 대한 것을 시차원에서도 관리를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진주는 문화자산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근대쪽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그런것들을 잘 활용해도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고요 1916년이 한국 대중가요 첫 발을 떼던 떄였고. 한국 대중 가요가 100년의 한 세기의 역사를 기록 하게 되는 시점이 2년 남앗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것인데 100년이라는 기간이 사실 간단한건 아니거든요 그런 때를 맞아서 뭔가 할수 있는 필요가 있는데 지역에 의미를 두자면 부산 목포 진주가 의미있는 활동을 할수 있는 지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자리에 진주 시민이 다 오신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오늘 제 보여 드렸던 자료 내용에 공감을 해주신다면 진주시에서 여론이 조성되고 하면 대중의 중요한 것으로서 진주의 폭이 넓어질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오늘 일단 준비한 내용은 여기 까지인데 그냥 끝내면 섭섭하니까 시간상 빨리 끌고 갔었는데 어떤 노래를 추가로 들어보면 좋겠습니까? 남강의 초 한번 들어볼까요?

예 이런 노래입니다 진양호도 보면 남강비에 서있는데요 하도 오래되서 언젠가 다시 한번 이 노래도 그렇고 이재호라는 인물도 그러고 다시 선명하게 살아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담당자
평생학습원 평생학습팀(055-749-8325)
  • 즐겨찾기
  • 인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 만족도에 대한 평가와 글을 남겨주세요.

만족도보기


빠른 메뉴

  • 진주시청
  • 진주미래인재학습지원센터
  • 진주시 정보화교육
  • 진주시 능력개발원
  • 진주청소년수련관
  • 진주시립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