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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제 63 회 진주시민 교양강좌
  • 개최일자 : 2017년 6월 20일
  • 강사 : 고학찬

주제 : 예술과 소통
강사 : 고학찬(예술의전당 사장)

여러분, 강의해 주실 고학찬 사장님께서는 한양대 인문 영화과를 졸업하시고 대전 국제대 실용예술학과 교수, 한국문화예술회관 연합회 회장을 거쳐 현재는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계십니다. 누구나 쉽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진흥사업을 추진하여 문화예술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계십니다. 오늘 진주시민 교양강좌를 위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진주를 찾아주신 고학찬 강사님을 큰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내용은 예술과 소통입니다. 예술과 소통. 여러분, 신문 보면 아시겠지만 매일 신문에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뭔고 하니 소통입니다, 소통. 소통이 안 된다는 거죠. 부모와 자식 간에, 선생과 제자 간에, 사장과 사원 간에, 시장님과 시민 간에, 전라도와 경기도 간에, 전라도와 경상도 간에. 가장 심각한 건 뭐예요? 남북 아픔. 지금 가장 대립되고 있는, 70년 동안 남과 북 소통이 두절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소통과 관련해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기술이 발달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전화기,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누구하고도 마음만 먹으면 소통하는 그런 시대입니다만 정작 우리사회는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속해 있는 사회는 소통이 잘 되시나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에 소통이 잘 됩니까?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간에 또 소통이 잘 안 돼요. 그러니까 사회가 어떻게 됩니까? 사회가 병드는 겁니다. 항상 무언가 싸울 거리가 생기는 겁니다. 사회란 어때요, 여러분, 편안한 소식이 없습니다. 그게 뭐냐? 소통의 문제입니다, 소통. 제가 학교 다닐 때는요, 전화기가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전화기 갖고 있는 집 별로 없었어요. 제가 서울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올라왔는데요, 우리가 사는 골목에, 골목 한복판에 전화기 있는 집이 한 골목에 한 대 있었나 그랬어요. 저희 어머니가 “야, 삼촌집 가서 삼촌 좀 오시라 그래라.” 지금 같았으면 핸드폰으로 “삼촌 오시래요.” 그러면 끝나는 걸 한 시간 걸려 버스 타고 왕십리 가서 삼촌 안 계시면 다시 집에 와서 “어머니, 삼촌 안 계시대요.” “그러냐?” 그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소통이 안 된다는 얘기가 없었어요.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고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소통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살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분야, 예술, 예술 중에서도 음악과 관련해서, 음악이 어떻게 우리 소통하고 연관성이 있는가에 대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방송국에서 프로듀서 생활을 하다 미국 가서 한 15년 살았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한 15년 살았는데요, 한 10년쯤 살다가 처음으로 미국에 어머니를 모셔왔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가 대구에 사셨어요. 제주도에 사시다가 저희 누나가 아들 하나 있는 게 저 미국으로 가버리니까 누나가 대구에 모시고 사셨어요. 제가 대구로 갔습니다. 대구 가서 10년 만에 어머니를 뵀어요. 뵀는데 “저, 어머니,,,” 근데 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시는 거예요. 치매가 왔어요, 치매가. 삼대독자 외아들을 10년 만에 만났는데 저를 몰라보시는 거예요. 누나가 그러시는 거예요. “어머니랑 같이 3일 동안 먹고 자고 있어라.” 그래서 3일 동안 같이 먹고 자면서 “엄마, 나야, 찬이야. 엄마 나 몰라?” 아무리 얘기해도 모르는 거예요. 저에 대한 기억 자체가 아예 없으신 거예요. 부모와 자식 간에 10년 만에 만나서 소통 단 한마디도 못한 거예요. 마지막 날 제가 이제 기차시간 30분 남아서 그랬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젊었을 때 노래를 잘했어요. 제주도 사셨을 때 잘 아시던 노래. 그래서 제가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한테 “어머니, 제가 노래 한 곡 할게요.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그래서 어머니가 젊었을 때 잘 아시던 제주도 민요 ‘이야홍타령’을 했습니다. 여기 제주도분 계시나? 이렇게 하는 노래예요. “이야홍, 이야홍 (노래중)” 그런데 어머니가 가만히 들으시다가 갑자기 “서귀포 해~~~~” 노래를 이어서 하시는 거예요. 이때 박수치셔야 돼요. (박수) 백 마디 말로 어머니 어머니 해도 못 알아들으시다가 노래 딱 한 소절 하니까 생각이.. (동영상 시청 중)  그래서 남편이 같이 살아요. 그래도 이 부인은 매달 5일만 되면 남편 이름 쓴 거 가지고 “남편 오는 날입니다, 나가야 된다.” 근데 이날 남편이 옛날 같이 연애하던 시절의 그 음악을 한번 들려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저랑 똑같은 생각인 겁니다. 그래서 부인이 갔다 오는 날 오는 시간에 맞춰서 연주를 합니다. 근데 이 부인이 가까워질수록 ‘어디서 듣던 그런 소린가?’ 했더니 점점점 과거가 되살아나는 겁니다. 지금 와서 보니까 자기는 피아노 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껴안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음악은요, 인간들끼리만 소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들끼리도 해요. 여러분, 제주도 민요에 ‘너영나영’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한번 해 보세요. “너영~나~~영 두리둥~실~~ 놀구요, 낮에낮에나 밤에밤에나 상사랑이로~구나~~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려서~~ 운다.” 다같이! (노래 중) 여러분, 새들이요, 아침에 울죠? 그거 배가 고파서 우는 겁니다. 그게 새들의 유일한 수단입니다. 근데 밤이 되면 왜 우나요? 님이 그리워서. 밤이 되면 외롭잖아요. 그러니까 이 밤을 같이 새울 님이 그리운 겁니다. 그래서 목청껏 소리 내서 우는 거예요. 모든 곤충, 모든 동물 다 똑같습니다. 암놈은 울지 않아요. 밤에 님이 있는 창밖에서 소리 내서 우는 건 다 남자에요. 어떤 남자가 부르는 노래가 내 귀에 들어오는가, 그 남자를 만나는 겁니다. 짐승들도, 곤충들도, 동물들도 소통하는 거예요. 동물들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고 식물들도 소통합니다. 한 4~5일 전에 뉴스에 나왔던 거 여러분 한번 보세요.
뉴스 : 음악을 틀자 역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건 외국노래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번엔 중국노래를 틀어줬습니다. (중국노래 중.. 반응 없음) (한국노래 중) 언제 그랬냐는 듯 활발하게 춤을 춥니다. 이 식물의 원산지는 중국 남서부 윈난성입니다. 중국에 음악을 틀면 춤을 추는 생물이 있어 화제입니다 
식물들도 음악에 춤을 춥니다. 음악이 얼마나 힘이 있으면 저 귀 없고 눈 없는 식물들도 춤을 추겠습니까. 제가 1980년도에 미국에 갔는데요, 가서 맨 처음 간 직장이 LA에 있는 남자 옷가게였어요. 거기 매니저로 취직을 했어요. 첫 직장 첫날 첫 출근이니 얼마나 가슴이 설렙니까. LA다운타운에 완전 흑인 동네에 어마어마하게 큰 남자 옷가게가 있었어요. 문을 딱 열고 들어가는 순간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왜냐? 가게 안에 틀어놓은 음악이 제가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음악을 틀어놨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 청년들이 좋아하는 랩뮤직을 틀어놨어요. 1980년도에. 그 당시 우리나라에 그런 음악이 없었어요. 딱 들어가니까 “익따라 라비다 니따라 롸딸따 이그다다 둥다다 붐바다 빠라빠라 둥따라” 가게가 떠나갈 정도로 틀어놨어요. 일하는 애들 전부다 이러고(몸으로 랩 음악 타는 모양) 있었어요. 전부 다. 나올까 생각했는데 초등학생 딸 셋이랑 마누라 먹여 살려야 되니까 다시 들어가서 내가 그랬어요. 세일즈맨 8명을 불러다가 “야, 저 음악 좀 바꿔. 채널 바꿔.” 했는데 안 된대요. “야, 내가 오늘부터 새로 온 매니저야. 내 명령 어길 거야?” “오케이.” 라디오 사이클을 돌리다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채널이야. ‘아, 살았다.’ 스탠다드 뮤직 나오는 채널에 고정해 놓고 일주일 동안 일을 했습니다. 근데 첫 직장인데 잘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본사에서 매니저가 왔어요. 와서는 왜 이 지사가 매출이 1/3이 떨어졌냐는 거예요. 나는 모르겠다 그랬어요. 근데 세일즈맨 8명이 뭐라 그랬냐. 새로 온 매니저가 라디오 채널을 바꾸라고 해서 바꿨더니 손님들이 왔다가 다 갔다 그거야. 이러고 들어왔는데 클래식 음악이 나오니까 다 나갔다 그거야. 난 그걸 몰랐어요. 그래서 매니저가 나한테 그래요. “당신, 본래 라디오 채널로 돌려놓을 거야,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거야?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해.” 거기는 바로 fire면 fire이에요. 가라면 가야 돼. 어쩌겠어. “오케이.” 다시 옛날 채널로 돌아갔어요. “익따라 라비다 니따라 롸딸따 이그다다 둥다다 붐바다 빠라빠라” 아침부터 밤까지 그거예요. 처음 3일 동안 제가 ‘이 음악 들으려고 내가 그 좋은 방송국 PD직업 내팽개치고 미국을 왔나.’ 굉장히 놀라웠어요. 나흘째 되는 날 화장실에 가는데요, 나도 이러고 가고 있어. 나도 모르는 새에 이러고 있는 거야. 걔들이 좋아서 듣는 랩뮤직에 나도 모르는 새에 좋아하게 된 거죠. 같이 그 세일즈맨하고 앉아서 밥을 먹는데 걔들은요, 손을 안 씻어요, 손을. 남자 옷가게는 특히 먼지가 많습니다. 햄버거 시켜서 먹는데 손으로 먹잖아요. 손도 안 씻고 와서 햄버거를 먹다가 토마토케첩이 손에 묻으면 다섯 손가락 다 쪽쪽 빨아먹어요. “야, 손 좀 씻고 와서 먹어라.” 하니까 어차피 꺼먼 손인데 씻으면 뭐하냐면서 안 씻겠대. 속이 울렁거리지만 걔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나도 좋아하게 되니까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맛있게 햄버거를 먹게 되는 거예요. 그게 뭐야. 한 식구가 되는 겁니다. 식구라는 게 뭐냐.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 게 식구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참 제가 좋은 경험을 했어요. 이 흑인과 한국 사람인 내가 소통할 수 있는 걸 누가 만들었느냐? 같이 앉아서 같은 음악을 들으니까 소통이 되는 겁니다. 그때 저는 느꼈어요. ‘이야, 음악이, 음악의 힘이 소통을 만드는구나. 소통의 힘이 동질성을 만드는구나. 너나 나나 이 가게에서 일하는 일원이다.’ 제가 LA에 있다가 뉴욕에 갔습니다. 뉴욕에 갔더니 우리 한국 사람들이 한 10만 명이 전부가 야채가게, 생선가게, 세탁소, (?) 네 가지입니다. 이민자들의 운명이 뭔고 하니 현지에 있는 현지인들이 싫어하는 걸 하는 게 이민자들의 운명입니다. 하기 좋은 건 다 자기들이 하고 하기 싫은 건 이민자들이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저 안산공단에서 그 공기 나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전부 다문화입니다. 우리가 하기 싫은 걸 게네들이 와서 하고 있는 겁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이민자들의 운명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뉴욕에 가서 맨 처음 야채가게 시작한 게 2년도 안 돼서 뉴욕 전체 야채가게의 90%를 한국 사람이 합니다. 완전 독점이죠. 미국 사람들은요,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저녁시간에 문 닫고 집에 갑니다. 왜? 가정이 있으니까. 아무리 가난해도 가정으로 돌아가요, 저녁시간에.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딱 가보니까 ‘세븐일레븐’이라는 가게가 제일 잘돼. 지금 한국에 나와 있죠, 세븐일레븐. 세븐일레븐이 뭐냐. 아침 7시 오픈해서 밤 11시에 닫는 가게라는 거예요. 그게 가게 이름이 됐어요. 아침 7시 오픈해서 밤 11시까지 하니까 외국 사람들이 되게 좋아했어요. “이야, 언제든지 내려가면 가게 문이 열려있다.” 잘됐어요. 근데 한국 사람들이 가 가지고 “세븐일레븐? 야야, 문 닫지 마. 24시간 오픈.” 밤거리가 화려해졌어. 왜? 한국 사람들이 가게 문을 안 닫으니까. 그리고 어떻게 돼요? 집에 안 들어가는 겁니다. 못 들어가는 거죠. 가게에서 자고 새벽 3시에 도매장에 가서 야채 가져오고, 생선 가져오고. 엄청나게 부지런한 민족으로 평가됐어요. 뉴욕타임즈에서 ‘세계에서, 그 많은 세계 이민자들이 몰려왔지만 한국 사람만큼 부지런한 민족이 없다’ 칭찬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 그 아버지 세대와 어머니 세대, 그 세대를 따르는 어린 세대  간에 소통이 완전 두절됐어요. 엄마 아빠가 집에 안 오니까 말을 할 기회가 없으니까. 아이들은 우리말 다 잊어버려요. 엄마 아빠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 야채가게에서 영어할 게 뭐 있겠어요. “How much?” “Ten dollars.” “Thank you.” 끝이에요. 내가 가보니까요, 한국의 청소년들이 차이니즈 대학교에 들어가서 잘못됐어요. 부모들은 저 자식들 때문에 미국 가서 잠도 안 자고 일을 하는데 정작 자식들은 잘못됐어요. 마약. 자기 집을 자기들이 털어요. 왜? 차이니즈 대학교에서 버티려면 정보를 줘야 돼. 어느 집에 돈이 있나. 우리 애들이 정보가 어디 있어. 자기 어머니가 달러를 어디 숨겨놨는지는 알잖아요. 자기 어머니가 며칠날 한국 사람들끼리 계약하는지 알잖아요. 그걸 정보를 줘 가지고 자기 집을 털게 하는 거예요. ‘이야, 큰일 났다. 이게 엄마 세대와 딸 세대, 아빠 세대와 아들 세대 간에 소통이 완전 두절되면서 나오는 문제다. 엄청나게 커졌구나.’ 그래서 제가 한국 사람에게 어떤 방송을 해야겠다는 거죠. 소통의 장이 있어야겠다는 거죠. 해서 방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가 뉴욕 단칸방에 살았습니다.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어요. 어떻게 방송을 합니까. 돈이 있어야죠. 돈이 있으면 어떡합니까? 방송 허가를 받아야 돼요. 제가 뉴욕 시애틀에 전화를 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온 고학찬이라는 사람인데 내가 방송을 할라고 왔소, 왜 중국 사람, 일본 사람들은 그들 나라 말로 방송하고 있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우리말 방송을 못하게 하느냐, 내가 당신을 만나서 알고 싶다, 했더니 시장님이 날 좀 보자고 그러더라고. 좀 보재요. 여러분, 서울시장님이 저 방글라데시에서 온 총각이 전화해서 “시장 좀 만납시다.” 하면 만나주겠어요? 나한테 뉴욕 시장이, 그 大 뉴욕 시장이 나같이 이름도 없는, 한국에서 온 청년을 만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나서 얘기했어요. 당신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발표해도 한국 교포사회하고는 소통이 안 된다, 우리 교포사회는 영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로 하여금 우리말, 한국말로 방송하게 해 주면 당신의 정책을 충분히 우리 한국 커뮤니티에다가 알려 주겠소. 딱 그 얘기 했더니 그 자리에서 오케이야. 돈이 있냐, 뭐냐 안 물어봐. 매일 FM 2시간. 12시부터 2시까지. 뉴욕시 산하 방송 WNY방송. 지금도 있습니다. 졸지에 방송 허가를 받았어요. 집에 오면서 말이에요, “야, 방송 허가는 받았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집에 와서 우리 집사람한테 “여보, 시장이 방송하래.” 그러니까 와이프가 놀라죠. “아니, 뭘 가지고 방송할 거예요? 마이크 하나 없이. 스튜디오가 있어요, 아님 돈이 있어요, 사람이 있어요?” 아, 사람은 있어. 우리 집사람이 아나운서거든. 그래서 인건비는 안 들어가. 그래서 제가 스튜디오가 없어서 우리 아파트 단칸방 창문을 담요로 가리고 동네에 나가서 중고 마이크에 녹음기 사다가 전화선에 연결시켜 방송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교포들이 말이에요, 여기 세탁소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미국 세탁소는 스팀 문화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위로가 있어요? 라디오? 텔레비전이 없어요. 텔레비전 보면서 생선 칼질 할 수 있습니까? 세탁소에서 다림질 할 수 있나요? 못 해요. 라디오밖에 안 돼요. 라디오 돌려 봐야 전부 영어만 나오잖아.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방송을 시작했어요. 돌리다 보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뉴욕에서 방송되는 한미방송입니다.” 우리말 방송이 나가니까 교포들이 막 감동을 했어요. 여러분,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젊은이는 젊은이들대로,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엄마 아빠들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하십시오. 그래서 공동의 삶, 소통의 장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미국 교포사회에 처음으로 소통의 장이 열렸어요. 대한민국의 총영사관 뉴욕에 있었습니다. 문화원 있습니다. 어느 사회도 교포 돌보지 않았어요.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요. 단돈 1달러도 저한테 준 적 없습니다. 방송한다고 해도. 제일 처음 어떤 분이 전화 왔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좋아하는 노래 신청해 주십시오.” 전화가 따르릉 왔어요, 여자 분이. “어디 사시는 누구신가요?” “저요? 저는 이름이 성은 양이고 이름은 공주입니다..” 여러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저의 누나뻘 되는 분들이 미군들에게 몸을 팔았습니다. 양공주가 됐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이 외화벌이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온 나라가 다 폭탄 세례를 맞아가지고 먹을 게 없었습니다. 이제 식구가 돼요. 아줌마, 아빠가 식구가 돼요. 이게 뭐예요? 문화입니다. 여러분, 교회 다니시는 분? 교회도 안 다니시나? 성당 다니시는 분? 여러분, 교회나 성당 가면 뭐하십니까, 예배하기 전에? 기도하고 또? 찬송가 부르죠, 찬송가. 여러분, 교회를 가면 반드시 찬송가를 부릅니다. 찬송가를 왜 부르느냐면요, 예배보기 전에 찬송가를 불러야, 불러야 뭐가 됩니까? 목사님과 자기와의 소통의 문이 열립니다. 성도들끼리의 마음이 열립니다. 우리가 한 형제라는 느낌을 느끼게 하는 게 바로 찬송가입니다.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일을 보면요, 예배 끝나고 교회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요, 가슴이 꽉 닫히게 되어 있어요. 허술하게 열어 놨다가는 사기 당하게 돼 있어. 그러니까 마음을 꽁꽁 닫고 요즘같이 가문 땅처럼 우리 마음이, 우리 가슴이 꽝꽝 닫혀 있어요. 목사님이 제아무리 명설교를 해도요, 씨앗이 우리 가슴에 와서 박히지 않습니다. 찬송을 몇 번 하고 나면요, 마음이 열려요. 소통의 문이 조금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찬송가를 불러요. 여러분, 동창회 가면 무슨 노래 하나요? 동창회 가면. 교가 부릅니다, 교가. 몇십 년 선배, 후배들이 앉아가지고 서먹서먹하잖아요. 근데 선배 후배들이 모여서 교가를 크게 부르고 나면 소통이 확 되는 거예요. “선배님.” “어, 요즘 뭐해? 우리 사무실 한번 찾아와.” “선배님, 일 좀 도와주십시오.” “아, 도와줄게.” 동창회 가서 교가 부르고 나면요, 형제보다 더 친하게 됩니다. 이게 음악의 힘이에요. 제가 미국에 사는데, 미국에 갔더니요, 그 10만밖에 안 되는 교포사회가 매일 싸워요. 무슨 동네가 그렇게 많아요. 영남향우회, 호남향우회, 무슨 고대 동창회에 연대 동창회에 심지어는 말띠회, 개띠회 이런 것도 있어요. 뭘 이렇게 많이 만드는지. 그럼 모이면 뭐합니까. 맨날 싸워. 밥 먹다 싸워, 술 먹다 싸워. 저는 제주도민회 이런 거 해가지고 도민끼리 모여서 계를 하곤 했는데 그러다 꼭 싸워요. 그래서 제가 “우리 계하기 전에 애국가 한번 부르고 합시다.” 애국가 한번 부르고 나면요, 한 시간을 안 싸워. 진짜요, 한 시간을 안 싸워. 여러분, 애국가 불러본 지가 언제예요? 애국가 부릅니까, 요즘? 잘 안 불러요. 국회 행사에 가도요, 국회위원들, 대한민국 국민들 대표가 모인 곳인데 무슨 행사 같은 거 하면 국민의례를 생략하잖아요? 애국가는 왜 있는지 아세요? 생략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이라는 사회는요, 주인이 없는 사회입니다. 본래 미국의 주인은 원주민들이에요. 백인들이 가서 원주민들 쫒아내고 세운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랍니다. 전 세계 300개 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보다 단결 더 잘해요. 서로 다른 민족 300개 사는데, 우리같이 단일민족, 단군 자손하면서 뭐 단일민족 외치는 나라가 싸움을 더 많이 해요. 거기 영국계, 프랑스계, 일본계, 한국계, 중국계, 인도계... 길에 나가보면요, 장관입니다. 다 다른 민족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내에서 까요? 게네들은요, 초등학교 때 학교 가 보세요. 반드시 국가 부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애국가 잘 안 불러요. 비록 민족은 다르지만 우리가 미국의 깃발 아래 있는 미국 시민이라는 걸 뭘로 다짐하느냐. 노래로 다짐합니다. 어릴 때부터 시작과 끝은 전부 국가를 부릅니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려면요, 진주시민가를 한 개 만들어요. 진주시민이 모이면 노래를 하세요. 단합이 잘됩니다. 이 노래의 힘이 대단해요. 1985년도에 제 선배 이귀도 소프라노가 북한을 갔습니다. 최초로 남쪽에서 올라가 위문공연을 했어요. 평양에 가서 평양시민들 앞에서 노래를 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어요. 그때 북한 당국은 말이에요, “동포들 전부 가만히 앉아 박수만 치라우.” 그랬는데 이귀도 선생이 말이에요, 쭉 가다가 마지막에 노래를 딱 끝내니까 평양시민들이 다 일어났어. “와!!!” 당국의 명령을 버렸습니다. 그 당시 65년 닫혔던 소통의 벽이 ‘그리운 금강산’ 하나로.. 이게 노래 한 곡의 힘이에요. 사람 몇 사람 보내고 몇 사람 보내고 협상하고 회담하고 돈 줄때는 얘기하고 돈 안주면 딱 끊어버리고. 여러분, 소통이 돈 가지고 안 됩니다. 저 서울에 강남에 가면요, 좋은 차, 외제차 타고 다닙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네?” 하면 “우리 아버지가 사 줬어요.” 수억짜리 고급차 타고 다녀요. “너 아버지하고 친하냐?” “음....” 좋은 차 사줄 때는 친해. 아빠는 뭡니까. 자식들하고 소통할 시간이 없고, 그러니까 뭘로 때우느냐, 돈으로 때우는 거예요. 좋은 차 사주는 걸로 나는 아빠 역할 다 했다 하는 거예요. 하지만 진짜 아버지와 아들 간의 소통은 이뤄지지 않아요. 신차가 나와서 “아빠, 이 차 새로 하나 나오는데 사줘.” “인석아, 타고 다니던 차 타고 다녀.” 그 회사는 노사관계가 어떻습니까? 노사관계가 원활한 회사가 없어요. 회사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노조는 불만이 있고, 노조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사측은 불만이 있습니다. 맨날 싸우는 거예요, 맨날 뭐. 그 청소하시는 분들만 해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청소하시는 미화원 아주머님들은 다 외주용역회사 직원들이에요. 경비원, 주차 관리. 우리 예술의 전당이 딱 오백만 명이 모여요. 딱 오백만 명이. 그 오백만 명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냐? 우리 회사 직원들이 아니고요, 그 외부용역회사 직원들이에요. 관객이 들어와서 “여기 음악관 어디로 가죠?” 누구한테 물어봐요? 제복 입은 분. 우리 회사 사람들이 아니라 그럼 그 분들은 뭐 어떻게 하겠어요. ‘담당직원도 아닌데 왜 나한테 물어봐.’ 짜증이 나지 않습니까. 자기는 청소해야 되는데. “절로 가 보세요.” 그럼 관객은 어떻게 생각해요? ‘야, 전당 직원들이 뭐 이래?’ 고객만족도가 형편없었습니다. 제가 온 다음에 고객만족도 4년 연속 최우수를 받았어요. 어떻게 했겠습니까? 제가요, 오페라 표 3장씩을 3백 명에게 선물했습니다. 전당에서 발행하는 표니까 싸게 가지고 있어요. 오페라 티켓을 한 용역회사 직원에게 3장을 줬어요. “가족들하고 와서 보십시오.” 그랬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저한테 그랬어요. “사장님, 저는 오페라하우스 지하 주차장에서 10년 동안 주차 관리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 번도 오페라를 본 적 없었습니다. 근데 고사장님이 보내주신 티켓을 가지고 우리 가족이 가서 봤는데, 아들 녀석이 학교 가서 그랬답니다. ‘야, 너희 오페라 본 적 있어? 우리 엄마가 예술의 전당 다니시잖아. 사장님이 말이야, 티켓 선물로 주셔가지고 봤어.’” 자랑했다는 거예요. 티켓 한 장이 그들도 예술의 전당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겁니다. 사장이라고 월급 마음대로 올려줄 수 있나? 기재부에서 허락 다 받고 올려줘야지. 여러분, 용역회사 직원들의 불만이 없어지죠. 그 오페라 티켓 하나, 오페라 한 편 가지고 전당과 그들 간의 소통이 시작되고 그들의 얼굴이 환해지는 거예요. ‘아, 나도 그냥 용역회사 직원이 아니고 사장님이 우리를 직원으로 생각하는구나.’ 그죠? 여러분, 음악이 갖는 힘이 여러 가지 힘이 있습니다만, 음악은 그 안에 뭐가 있습니까? 하모니가 있습니다, 하모니. 우리 동양 음악은요, 중국도 마찬가지고 미국도 마찬가지고, 이상하게 하모니가 없어요. 음악의 3요소가 뭡니까? 멜로디, 리듬, 하모니입니다. 근데 우리 음악도 멜로디하고 리듬은 있어요. 근데 뭐가 없느냐? 하모니가 없어요. 우리 음악은 말이죠, 다른 소리를 내는 걸 허용을 안 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같이 부르지, 이걸 하모니로 절대 안 합니다. 다른 소리를 내면 큰일 나요. 근데 서양 음악은 어떻습니까? 일부러 다른 소리를 내게 해요. 도, 미, 솔. (화음 만드는 중) 이게 하모니예요. 여러분, 소통에 있어 말이죠, 똑같은 소리를 내게 하면 안 됩니다. 낼 수가 없어요. 사람마다 다 개성이 있고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소리를 내겠습니까? 옛날에 리더십이 뭔지 아세요? “내 말을 따르라~!” 다 같이 나와야 그게 옛날 리더십입니다. 요즘 리더십은 그게 아니에요. 요즘 리더십은 다 다른 소리를 내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 하모니를 만드는 겁니다. 다 같이 도, 미, 솔 해도 도도 아니고 미도 아니고 솔도 아닌 아름다운 하모니가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그걸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합창을 하라고 권하는 거예요. 엄마 아빠 싸워요, 싸울 수밖에 없어요. 왜?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잖아요. “넌 왜 내말대로 안 해?” 그건 안 되죠. 음악처럼 다른 소리를 내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가 옛날에 예식장 운영해 본 적 있습니다. 그 주례사를 제가 많이 썼어요. 왜냐? 여공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했기 때문에 주례를 모셔 갈 형편이 못 돼. 그래서 제가 결혼할 때마다 주례사를 써서 그걸 밑에 복덕방 하는 아저씨한테 “아저씨, 주례를 좀 봐주십시오.” 제가 주례를 잘합니다. 왜 잘하느냐? 그때 아주 연습을 많이 해서.. 근데 그 주례사의 내용이 뭐냐면요, 대개, 항상 제가 하는 말이 뭐냐? 제가 결혼할 때 들은 주례사입니다. 여러분, 결혼 다 하셨죠? 여러분, 주례사 기억하십니까? 여러분, 결혼하실 때 주례선생님이 하신 말 기억해요? 정신이 없었지, 뭐. 제 주례사는 누구였나 하니, 시인 박목월 선생님이었습니다. 박목월 선생님이 제 주례를 하셨어요. 근데 그 선생님이 저한테 결혼할 때 뭐라고 했냐면, 주례할 때,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 놀라서 “박목월 선생님 지금 뭐 잘못된 거 아니야? 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왜 일심동체가 아니라는 거야?” 뭐라고 하셨냐면 “어저께 밤까지 다른 가정에서, 다른 부모 밑에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하자마자 일심동체가 될 수 있겠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은 머지않아 싸움이 시작된다.” 야,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내 하고 싶은 대로 따라와야지! 남편은 짜장면 먹고 싶고 부인은 국수 먹고 싶은데 어떡하겠어. 오늘은 그래, 당신 먹고 싶은 걸 먹고 내일은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지 부부생활이 시작되는데 야, 결혼했는데 남편 말 따라와! 부인은 부인대로 왜 부인 말을 안 따라? 싸움이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서 소통의 기술을 익힌다면요, 부부생활이 아주 원활해집니다. 부부간에 화목이 일어나요. 하모니가 이뤄집니다, 하모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 오히려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 다만 너무 다른 소리를 내면 안 되지만, 화음이 안 되고 불협화음이 되는 거예요, 이 정도 차이가 나는 하모니는 더해지면 도도 아니고 미도 아닌 더 아름다운 하모니가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일반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음악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음악을 잘할 필요 없습니다. 집에 가서, 아침에 일어나서, 헤어지기 전에 “야, 오늘 노래 하나 부르고 헤어지자.” 아들 학교 가고 아빠 회사에 다녀오고 엄마 집에 있다 “야, 오늘도 노래 한번 부르고 가자.”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요, 절대 싸움이 없습니다. 우리 예술의 전당 와서 음악회를 보고 나가는 사람은요, 드나들어도 싸우지 않습니다. 음악이 그만큼 인간과 인간 간의 소통의 벽을 허물고요,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합창할 수가 없습니다. 옆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절대 하모니를 낼 수가 없습니다. 소리를 맞춰야 돼요, 템포를 맞춰야 돼요. 템포와 볼륨을 맞추려면 옆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 돼요. 여러분, 진주시청도 시 교향악단 있죠? 교향악단 연주하는 거 한번 보세요. 뭐 한 7~80명, 5~60명, 많게는 한 100명이 연주하는데 다 다른 악기, 다 다른 음을 내요. 하지만 듣는 사람들에게 하모니를 주잖아요. 지휘자가 지휘하는 대로 바이올린이 좀 크면 낮추고 목관악기가 좀 낮으면 높이고 타악기가 빠르면 좀 천천히 하라고 하고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그 많은 오페라 단원들이 각자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하모니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지휘자의 지휘, 그게 중요합니다. 지휘는 자기 멋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각 악기의 특성을 충분히 살려서 그때 어떤 음악이 제일 높아야 되느냐, 이때는 바이올린이 높아야 된다, 첼로가 높아야 된다, 비올라가 높아야 된다, 그 결정을 지휘자가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지도자는 합창, 합주단의 지휘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모니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그 사회의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자, 여러분, 혹시 내가 두서없이 말을 했지만은 제가 살아온 인생과 제가 하는 일과 결부시켜서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현 시점에서 겪는 소통의 문제를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진주시 딱 들어오면 집집마다 반가운 합창소리가 들렸으면 좋겠어요. “야, 진주 가면 말이야, 골목길마다 집집마다 노래 소리가 들려.” 제아무리 비싼 돈 들여서 만든 빌딩보다도 더 아름다운 도시, 그건 돈 안 들어갑니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진짜 그런 진주시가 되길 바랍니다. 혹시 질문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네요. 질문이 없으시면 이만 마쳐도 되겠습니까?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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